6월 29일 목동야구장에서 배재고 학생들이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를 외쳤다. 잘못한 것이다. 이건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그 이후에 벌어진 일들을 보면서 나는 이 사건의 주인공이 학생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1. 사건 이후 — 어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배재고는 사과문을 냈다. AI로 작성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비판이 더 커졌다.
그러자 어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배재고 앞에 극우 인사들이 보낸 응원 화환이 도착했다. "자랑스럽다", "기죽지 마라." 학생들에게 잘했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광주일고에는 폭탄을 설치했다는 협박 글이 인터넷에 올라와 경찰이 출동했다. 일부 국민의힘 인사들은 방송에 나와 "스타벅스 가자고 한 게 표현의 자유"라고 했다. "학생들을 징계한다? 이게 공산주의 국가"라는 말도 나왔다.
가수 하림은 이 상황을 보고 인스타그램에 이런 글을 남겼다.
"언젠가부터 정치적 공격을 근조화환으로 하는 기괴한 문화가 생겼다. 죽음을 연상시켜 받는 이의 기분을 망치겠다는 악의적인 의도다. 화환의 리본들은 거리에 그대로 노출된 '오프라인 댓글'과 같다."
그리고 이 대목이 핵심이다.
"누가 무슨 잘못을 했든 간에, 그 혐오의 잔재 사이를 뚫고 등교하는 아이들이 어떤 기분을 느끼겠는가. 다 무섭고 다 싫고 다 믿지 않을까. 세상은 원래 이렇게 서로를 미워하는 곳이라고 아이들이 무의식중에 학습하게 될까 두렵다."
2. 꽃으로 하는 고약한 짓들
하림의 글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꽃 이야기다.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말로 다 하지 못하는 슬픔을 다독이거나, 차마 전하지 못한 사랑을 고백할 때 꽃을 건넸다. 과거엔 폭력적인 총구에 꽃을 꽂아 평화를 말하던 이들이 있었다."
그 꽃이, 지금은 타인을 해치는 무기가 됐다.
배재고 앞에 선 근조화환들, 그리고 "자랑스럽다"는 응원화환들. 그것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매일 아침 그 사이를 지나 등교해야 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야구부 학생들만이 아니라, 그 학교 모든 학생들이. 자기들이 뭘 잘못한지도 모르는 채, 그 혐오의 풍경 속을 걸어야 했다.
극우 인사들이 응원 화환을 보낸 의도는 분명했다. 학생들에게 "너희가 한 것은 나쁜 게 아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 그리고 그 신호는, 징계와 사과라는 반대 신호보다 아이들의 뇌리에 더 강하게 남았을 수 있다.

3. 처벌이냐 교육이냐 — 사실 이건 논쟁이 아니다
클리앙을 비롯한 여러 커뮤니티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처벌이 먼저냐, 교육이 먼저냐" 논쟁이 벌어졌다.
"고등학생이면 다 알고 한 거다. 책임을 져야 한다."
"왜 저렇게 됐는지를 봐야 한다. 처벌만으로는 안 된다."
그런데 한 댓글이 이 논쟁을 간단하게 정리했다.
"처벌하면서 동시에 교육하면 안 되나요?"
맞다. 이건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다.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것과, 왜 그렇게 됐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은 동시에 가능하다. 오히려 둘 다 해야 한다.
문제는 어른들이 그 둘을 다 방기하고 있다는 거다. 처벌을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막아서는 어른들도 있고, 원인을 보는 대신 당장의 분노만 키우는 어른들도 있다.
4. MH세대 — 이 분석이 맞는가, 틀리는가
최근 언론에서 'MH세대'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기간인 2003~2008년에 태어난 지금의 10대들이 오히려 강한 반진보 성향을 보인다는 분석이다. 기성 언론은 "일베 때문"이라고 진단했지만, 일부에서는 다른 시각을 내놓는다. 진보 4050 부모 세대의 내로남불, 반대 의견에 대한 낙인찍기, 토론 대신 교화 방식이 10대들의 반감을 키웠다는 것이다.
이 분석은 일부 설득력이 있다. "일베 때문"이라는 진단이 불충분하다는 것, 그리고 검열이 오히려 밈의 타격감을 강화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분석에는 빠진 것이 있다.
첫째, 같은 환경에서 자란 여학생들은 왜 다른가. MH세대 현상은 압도적으로 남학생 현상이다. 부모의 위선이 원인이라면 딸들도 같은 반응이어야 한다.
둘째, 이 분석은 5.18 조롱을 "이해할 수 있는 반항"으로 프레이밍하는 효과가 있다. 원인을 설명하는 것과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은 다르다.
셋째, 배재고 사건에서 구호를 처음 시작한 건 1명이었다. 같은 밈에 노출된 학생들 중 그 구호를 외치지 않은 학생이 훨씬 많다. 환경이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결정 요인은 아니다.
5. 진짜 문제 — 아이들이 보고 있다
다시 하림의 글로 돌아온다.
"거리에 가득 찬 조화는 결국 우리 사회의 감정이 그만큼 메말라가고 있다는 서글픈 증거다."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이 5.18 조롱 구호를 외친 건 잘못이다. 6개월 전국대회 출전 정지 징계도 내려졌다. 7월 6일 86명이 광주를 찾아 직접 사과했고, 광주일고 교장은 그들에게 "어깨 펴라, 미래는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광주일고는 선처를 호소했다.
이 화해의 장면은 아름다웠다.
그런데 그 화해가 진행되는 동안, 화환을 보내고 방송에서 "표현의 자유"를 외치던 어른들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다. 이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가르쳐준 것은 무엇인가.
FM코리아에서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댓글은 이거였다.
"결국 좌우를 떠나 병신같은 어른들이 이 사회를 망치는 것." (공감 1180)
이 댓글의 공감 수가 말해주는 게 있다. 사람들은 안다. 이게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6.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가
배재고 사건은 끝났다. 사과했고, 화해했고, 선처를 호소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만들어낸 구조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5.18 조롱을 밈으로 소비하는 문화, 그것을 어른들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구조, 혐오를 꽃다발에 담아 학교 앞에 세워놓는 문화, 그리고 그 사이를 매일 걸어 다니며 세상을 학습하는 아이들.
하림의 말대로다. "우리마저 이 혐오의 방식에 익숙해지기 전에,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지켜내는 최소한의 품격을 회복했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강한 처벌도, 심층 분석도 아닐 수 있다. 어른들이 먼저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핵심 요약은 네이버 블로그에서 👇
🌸 꽃다발로 아이들을 때리는 어른들 — 배재고 사건의 진짜 민낯
배재고 학생들은 잘못했어요.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광주일고 선수들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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