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과 근육

1형당뇨인이 카니보어를 시작한 이유 — 혈당이 춤추는 삶을 멈추고 싶었다

잠도둑 2026. 3. 30.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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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공부를 바탕으로 쓴 정보성 글입니다. 의료 조언이 아니며, 1형당뇨 식단 변경과 인슐린 용량 조정은 반드시 담당 내분비과 전문의와 상의 후 진행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10년 넘게 탄수화물을 "의무적으로" 먹었다

1형당뇨 진단을 받고 나서 줄곧 들어온 말이 있다.

"운동하려면 탄수화물 챙겨 먹어야 해." "근육 키우려면 탄수는 필수야."

헬스를 시작하면서 이 말을 더 굳게 믿었다. 근육의 원료는 탄수화물이라고 생각했고, 고중량 훈련을 하는 날일수록 밥을 더 많이 먹으려 노력했다. 문제는 그 탄수화물이 내 혈당을 매일 롤러코스터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고혈당 → 인슐린 → 저혈당 → 간식 → 다시 고혈당

패턴은 항상 비슷했다.

밥을 먹는다. 혈당이 오른다. 인슐린을 놓는다. 잘 잡힐 때도 있고, 과하게 떨어질 때도 있다. 저혈당이 오면 손이 떨리고 식은땀이 난다. 급하게 사탕이나 주스를 집는다. 혈당이 다시 치솟는다. 그걸 또 인슐린으로 잡는다.

운동 전후로는 더 심했다. 운동 중에 혈당이 떨어질까봐 미리 탄수화물을 먹고 들어가면, 운동 강도에 따라 혈당이 어디로 튈지 예측이 안 됐다. 유산소를 하면 떨어지고, 고중량 스트렝스를 하면 오히려 오르는 날도 있었다.

당화혈색소는 6.0~6.1로 유지하고 있었다. 숫자만 보면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 숫자 뒤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혈당 그래프가 출렁이는 일상이 있었다. 평균이 좋아 보여도 변동성이 크면 혈관과 신체는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는 그걸 몸으로 알고 있었다.


"탄수화물이 근육의 원료"라는 오해

카니보어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반응은 이거였다.

고기만 먹으면 근육이 녹지 않나?

헬스 커뮤니티에서 워낙 오래 들어온 말이 있다. 탄수화물이 근육의 원료다, 글리코겐이 없으면 근성장이 안 된다, 저탄수화물 식단은 근손실을 부른다. 이 말들이 진짜처럼 느껴졌던 건, 완전히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핵심을 잘못 짚고 있다.

근육의 실제 원료는 단백질이다. 더 정확히는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그중에서도 류신(leucine)이 근합성 신호를 켜는 스위치 역할을 한다. 탄수화물은 근육을 만드는 재료가 아니라, 훈련 중 에너지를 공급하는 연료에 가깝다.

그리고 에너지 연료는 탄수화물만이 아니다.

케토 적응이 된 몸은 지방을 주연료로 쓴다. 간에서 케톤체를 만들어 뇌와 근육에 공급한다. 고중량 스트렝스처럼 순간적으로 ATP가 필요한 운동에서는 근육 내 크레아틴인산 시스템이 먼저 작동하고, 그다음이 글리코겐이다. 그런데 이 글리코겐은 식이 탄수화물 없이도 간의 포도당신생합성(gluconeogenesis)을 통해 단백질에서 어느 정도 충당된다.

물론 케토 적응 초기 4~8주는 퍼포먼스가 일시적으로 떨어진다. 이건 사실이다. 하지만 적응이 끝난 후에는 지방과 케톤을 효율적으로 쓰면서 근력을 유지하거나 향상시킨다는 보고가 꾸준히 나온다. 내가 카니보어를 단순한 다이어트가 아니라 진지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한 이유가 여기 있었다.

탄수화물이 없으면 근육이 사라진다는 건 오해다. 단백질이 충분하고, 훈련이 제대로 이뤄지고, 회복이 보장된다면 근육은 자란다.


그래서 카니보어가 나에게 주는 의미

핵심은 하나다. 혈당 스파이크를 만드는 변수 자체를 없애는 것.

탄수화물을 먹지 않으면 식후 혈당이 거의 오르지 않는다. 단백질은 포도당신생합성을 통해 혈당에 영향을 주지만, 이 과정은 3~5시간에 걸쳐 완만하게 진행된다. 지방은 혈당에 거의 영향이 없다. 고혈당 → 인슐린 → 저혈당 → 간식 → 고혈당이라는 그 반복 고리가 끊어진다.

인슐린 볼루스 용량 계산이 단순해진다. 탄수화물 계수(ICR)를 적용할 식사가 없으니 단백질 커버용 소량만 다루면 된다. CGM 그래프가 드라마틱하게 잠잠해진다는 경험담이 많은 이유가 이것이다.

또 하나. 1형당뇨는 췌장 베타세포를 면역이 공격한 자가면역질환이다. 진단 이후에도 만성 저도 염증이 지속된다. 카니보어는 렉틴, 옥살산, 피트산 등 일부 사람에게 장 투과성을 높이고 면역을 자극하는 식물성 성분들을 식단에서 제거한다. 염증이 줄면 인슐린 민감도가 올라가고, 운동 후 회복 속도도 빨라진다. 근비대를 목표로 하는 나에게는 이게 작은 문제가 아니다.


주의점 6가지 — 1형당뇨의 카니보어는 일반인과 다르다

① 인슐린 전면 재조정 — 반드시 의료진과 함께

탄수화물이 사라지는 순간 인슐린 요구량이 급감한다. 기존 용량을 그대로 유지하면 심각한 저혈당이 온다. 기저 인슐린(basal)과 식사 인슐린(bolus) 모두 재설정이 필요하다. 혼자 판단하지 말고, 반드시 CGM을 착용한 상태에서 의료진과 함께 단계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② 케토산증(DKA) — 1형당뇨만의 특수 위험

카니보어는 자연스럽게 케토시스 상태를 만든다. 일반인에게 케토시스는 안전하지만, 1형당뇨에서는 인슐린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때 케토산증(DKA)으로 빠르게 악화될 수 있다.

구분하는 법:

  • 케토시스: 혈중 케톤 0.5~3.0 mmol/L, 혈당 정상
  • DKA: 케톤 3.0 mmol/L 초과 + 혈당 높음 + 몸 산성화

혈당이 정상처럼 보여도 케톤이 올라가 있다면 인슐린 조정이 필요하다는 신호다. 식단 전환 초기에는 혈당과 케톤을 함께 측정하는 것이 안전하다.


③ 전해질 관리 — 근력 저하의 숨은 원인

케토 적응 초기 1~4주, 신장에서 나트륨 배출이 늘고 칼륨·마그네슘도 함께 빠진다. 근육 경련, 피로, 심박 이상이 나타날 수 있고, 스트렝스 훈련을 병행하면 이 손실이 더 크게 체감된다. 힘이 갑자기 안 나온다 싶을 때 전해질을 먼저 의심해볼 것.

  • 나트륨: 천일염 충분히, 하루 3~5g
  • 마그네슘: 글리시네이트 또는 말레이트 형태 보충
  • 칼륨: 고기·생선으로 식품에서 보충, 보충제는 신중히

④ 운동 중 혈당 패턴이 바뀐다

케토 적응 전에는 운동 중 저혈당 위험이 특히 높다. 적응 후에는 지방이 주연료가 되어 혈당 변동 자체가 줄어든다. 스트렝스처럼 고강도 무산소 운동은 카테콜아민 분비로 오히려 혈당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 유산소와 무산소의 혈당 반응 방향이 반대인 경우가 많다. CGM 데이터를 최소 4~6주 쌓아서 내 몸의 패턴을 파악하는 게 핵심이다.


⑤ 장기 지속 가능성 — 한국 식문화에서의 현실

순수 카니보어를 한국에서 장기 유지하는 건 솔직히 쉽지 않다. 회식, 외식, 가족 식사. 일부에서는 엄격한 카니보어 대신 동물성 식품 중심에 소량의 과일이나 꿀을 허용하는 "Animal-based diet"로 유연하게 접근한다. 완벽한 식단보다 지속 가능한 식단이 결국 이긴다.

장기 모니터링이 필요한 영양소: 비타민 D(한국인 대부분 부족), 비타민 C(혈당이 낮아지면 체내 활용률이 오히려 높아진다는 주장이 있으나 주기적 확인 권장), 장내 미생물 변화(섬유질 부재의 장기 영향은 데이터 아직 부족).


⑥ 의료진 소통 — 전제가 아니라 필수

한국 내분비과에서 카니보어나 저탄수화물 식단에 익숙한 의사는 아직 많지 않다. 하지만 "혈당이 잘 잡힌다"는 이유로 혼자 인슐린을 줄이거나 식단을 바꾸는 건 위험하다. 인슐린 조정, 케톤 모니터링, 정기 혈액검사(신기능·지질 패널 포함)는 의료진과 함께 설계해야 한다.


마치며

당화혈색소 6.0을 유지하면서도 하루에 혈당이 몇 번씩 출렁이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 숫자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안다. 나는 변동성을 없애고 싶었다. 탄수화물을 의무처럼 먹는 것을 그만하고 싶었다. 고혈당과 저혈당 사이를 오가며 몸을 혹사시키는 대신, 혈당이 조용히 유지되는 상태에서 제대로 운동하고 싶었다.

카니보어가 그 답인지는 아직 진행 중이다. 하지만 "탄수화물이 없으면 근육이 못 자란다"는 믿음이 오해였다는 것, 그리고 1형당뇨인에게 혈당 변동성 자체가 염증이고 스트레스라는 것, 이 두 가지는 이미 확인했다.

시작은 언제나 의료진과 함께. 데이터는 CGM이 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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