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AI 고전' 프로그램에서 자유론 강의 보다가, 정치 유튜브를 끊었습니다
최근에 EBS 'AI 고전, 역사를 바꾼 100책'이라는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AI로 복원한 고전 작가가 직접 강의하는 형식인데, 플라톤부터 다윈, 마키아벨리까지 다양한 인물이 나오더라고요.
그중에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강의를 1강부터 10강까지 쭉 봤는데, 5강에서 이상하게 자꾸 멈춰서 다시 돌려보게 되더라고요. 160여 년 전에 쓰인 문장인데, 마치 2026년 한국을 보고 쓴 것 같았거든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더 많이 싸우고 있습니다
먼저 숫자로 보겠습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절반 이상(57.8%)이 "1년 후 정치 갈등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답했어요. "완화될 것"이라고 답한 사람은 20%도 안 됐습니다.
더 놀라운 건, 우리나라가 "정치 문제를 가장 심각한 현안"으로 인식하는 비율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다는 조사 결과예요. 경제도, 안보도 아니고 정치가 제일 심각한 문제로 꼽힌다는 거죠.
요즘 유튜브 댓글창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민주당 지지자와 국민의힘 지지자가 같은 뉴스를 보고도 완전히 다른 결론을 내립니다. 서로를 향한 혐오 표현은 점점 거칠어지고, 같은 정당 안에서도 비주류 인사를 밀어내는 일이 벌어져요.
그런데 밀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어요
5강에서 정확히 이 부분에서 멈췄습니다.
"보수주의자는 말합니다. '전통과 안정이 중요해. 급진적 변화는 위험해.' 진보주의자는 말합니다. '변화와 개혁이 필요해. 낡은 것에 매달리면 정체돼.' 누가 옳을까요? 서로 틀렸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둘 다 부분적으로 옳습니다."
이거, 우리나라 정치 이야기 아닌가요?
밀은 1859년에 이미 이걸 정확히 짚었어요. 보수와 진보 중 누가 "정답"인지 가리는 게 아니라, 둘 다 진리의 절반씩을 쥐고 있다는 거예요.
전통을 완전히 무시하면 혼란이 옵니다. 하지만 변화를 거부하면 사회가 썩어갑니다. 완전한 진리는 둘 사이 어딘가에, 양쪽의 통찰을 결합한 곳에 있다는 거죠.
"끔찍한 건 충돌이 아니라, 침묵이다"
강의를 보면서 가장 소름 돋았던 문장이 이거예요.
"끔찍한 해악은 진리의 부분들 사이의 격렬한 충돌이 아니라, 진리의 절반을 조용한 방식으로 억압하는 것이다."
이 문장을 들으면서 우리나라 정치 유튜브 알고리즘이 떠올랐어요. 한 연구에 따르면, 유튜브를 포함한 디지털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비슷한 성향의 콘텐츠를 반복 노출시켜서 상대 진영에 대한 혐오와 음모론을 강화한다고 해요. 정책 비전을 소개하는 콘텐츠보다, 진영 논리를 자극적으로 대변하는 목소리가 더 잘 먹히는 구조가 만들어진 거죠.
밀이 말한 "충돌"은 사라지고, 대신 각자의 알고리즘 안에서 "침묵의 메아리방"만 남은 셈이에요. 내 편 말만 듣고, 반대편 말은 듣지도 못하게 된 거죠.

"어차피 우리 편이 맞으니까 괜찮다"는 생각의 함정
5강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이거였어요.
"우리 의견이 정말로 옳고, 반대 의견이 정말로 틀렸다면? 그럼 억압해도 되지 않나요?"
밀의 답은 "아니요"입니다. 왜냐고요?
"도전받지 않는 진리는 죽은 교조가 된다."
쉽게 말하면 이거예요. 내 정치적 신념이 100% 옳다고 해도, 반대 의견을 들을 기회조차 없으면 내 신념은 점점 굳어버린 화석이 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조차 설명할 수 없게 되는 거죠. 그냥 "우리 편이니까" 믿는 신념만 남게 됩니다.
밀은 이걸 한 동시대 작가의 표현을 빌려 "확고한 신념의 깊은 잠"이라고 불렀어요. 확신하는 순간 사람들은 생각을 멈춘다는 뜻이에요.
그럼 우리는 뭘 해야 할까요
밀이 제시한 답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소크라테스가 끊임없이 질문했던 것처럼, 중세 가톨릭교회가 성인을 추대할 때 일부러 "악마의 변호인"을 세워 반대 논리를 펴게 했던 것처럼 — 반대 의견을 일부러 들으라는 거예요.
물론 밀도 명확한 경계는 그었습니다. 의견 표현을 넘어서 선동이 되거나, 직접적 괴롭힘이나 명예훼손으로 이어지면 그건 제한해야 한다고 했어요. 하지만 그게 아니라 단순한 의견 차이라면, 최선의 대응은 차단이나 검열이 아니라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듣고 차근차근 반박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강의를 다 보고 나서 제가 한 일
1강부터 10강까지 자유론 강의를 다 보고 나서, 정치 유튜브를 보는 방식을 바꿨습니다. 제가 동의하는 채널만 보는 게 아니라, 가끔은 일부러 반대 진영 채널도 한 번씩 봅니다.
물론 화가 날 때도 있어요. 그런데 밀이 맞았다는 걸 매번 느껴요. 상대편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해하고 나면, 제 생각이 더 또렷해지거든요. 동의하지 않아도, 적어도 "저 사람들이 왜 저렇게 화가 났는지"는 알게 되는 거죠.
160여 년 전 한 철학자가 던진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게, 어쩌면 우리가 그동안 별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적어도 답은 이미 나와 있어요.
진보가 맞냐, 보수가 맞냐는 질문 자체가 잘못된 질문이라는 것. 그리고 어느 쪽이든 "도전받지 않는 확신"이야말로 가장 위험하다는 것.
EBS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게 새삼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 번 찾아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이슈 한눈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한성숙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완전 정리 — 다주택·정보유출·농지법 위반까지 (0) | 2026.06.25 |
|---|---|
| 한국 vs 남아공 오전 10시 킥오프 — 손흥민 선발 제외, 홍명보의 승부수 완전 해부 (0) | 2026.06.25 |
| [2026 리포트] 아이폰 18 프로 루머 총정리: 2nm 공정과 완전한 풀스크린, '온디바이스 AI'의 완성 (1) | 2026.04.15 |
| 고유가 피해지원금 총정리 — 나는 얼마 받나, 언제 받나, 어떻게 받나 (2026년 추경) (0) | 2026.03.31 |
| 박왕열 송환 총정리 — 참치 사장이 마약왕 '전세계'가 되기까지 10년의 기록 (0) | 2026.03.25 |